고운글&일상스토리/이해인시(세실리아)

매화앞에서

Lo러브ve 2019. 3. 14. 20:36

 

매화 앞에서

 

 

보이지 않기에 더욱 깊은

 

땅속 어둠

 

뿌리에서

 

줄기와 가지

 

꽃잎에 이르기까지

 

먼길을 걸어온

 

어여쁜 봄이

 

아침내 여기 앉아 있네

 

 

뼛속 깊이 춥다고 신음하며

 

죽어가는 이가

 

마지막으로 보고 싶어하던

 

희디흰 봄 햇살도

 

꽃잎 속에 접혀 있네

 

 

해마다

 

첫사랑의 애틋함으로

 

제일 먼저 매화 끝에

 

피어나는 나의 봄

 

 

눈 속에 묻어두었던

 

이별의 슬픔도

 

문득 새가 되어 날아오네

 

꽃나무 앞에 서면

 

갈 곳 없는 바람도

 

따스하여라

 

 

'살아갈수고 겨울은 길고

 

봄이 짧더라도 열심히 살 거란다

 

그래, 알고 있어

 

편하게만 살 순 없지

 

매화도 내게 그렇게 말했단다'

 

눈이 맑은 소꿉동무에게

 

오늘은 향기 나는 편지를 쓸까

 

 

매화는 기어이

 

보드라운 꽃술처럼 숨겨두려던

 

눈물 한방울 내 가슴에 떨어뜨리네

 

 

- 이해인, '매화 앞에서'